감성지능시각실험실, 개인적 감정과 사회적 감정
고윤정 (토탈미술관 객원편집장, 이미단체 대표)
김희욱이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는 ‘감정’이다. 감정은 대부분 사적인 태도에서 기인하여 발생하는 비과학적인 요소로 치부된다. 여기에 덧붙여 한 때 크게 유행했던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은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이 제안한 단어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야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대니얼 골먼은 감정조절을 리더십 행동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감정지능은 다중지능 이론등과 함께 한때 IQ만이 사회적인 능력으로 인정받는 시대에서 EQ와의 균형에 대해서 중요성이 대두되어 문화사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사회화 과정으로 여기고 있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처럼 불안감이나 공포감, 슬픔 등을 드러내면 나약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김희욱은 이렇게 사람들이 주로 자주 느끼는 감정이지만 사회화 과정 속에서 억눌리게 되는 감정을 리서치하였다. 이 중 ‘불안’, ‘질투’, ‘분노’, ‘슬픔’을 주요 테마로 하여 각각의 감정을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고, 이제까지는 ‘불안’과 ‘질투’를 중심으로 한 개인전을 열었다. 작가는 각각의 감정이 억눌리는 과정을 조사하고, 이를 공간적인 작업으로 펼쳐낸다. 이 4가지 감정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 감정으로 ‘참아야 한다’, 혹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 ‘내세우면 안된다’, 등등 행동에 대한 조심성과 주로 연관된다.
감정을 주제로 한다고 하면, 떠오르는 전시의 이미지가 색이 매우 강렬하거나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어야 할 텐데, 김희욱은 상황에 대한 묘사나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표현은 최대한 자제한다. 마치 감정이라는 것이 억눌려 있어야 되는 현대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듯 하얀색으로 차갑게 뒤덮인 이미지, 강렬한 붉은색 이외에는 어떠한 사실적인 상황도 드러내지 않는다.
<훔쳐보는 암살자>(2018) 전시에서는 질투가 가진 상반된 성향을 두 공간에서 나누어 전시하였다. 질투는 강렬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표현하기에 꺼려하는 아이러니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에 근거하여 Part1은 ‘훔쳐보는’에 집중하여 창문의 구조, 공간을 가르는 넓은 실루엣, 왜곡되어 보이는 굵은 통 등을 이용하여 텍스트와 구조에 집중하였고, Part2는 질투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파괴적인 감정에 주목하여붉은색바닥과기둥형태의입체물위주로한작업을선보였다. 이두전시가갖고있는테마인‘질투’는TV 드라마속에자주등장하는 감정으로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누군가에 대한 강렬한 미움이 있거나, 다시 갑작스럽게 감정이 식는 등 상반된 마음이 극단적으로 오고가는 감정이다. 김희욱은 이러한 상반된 상황을 대조되는 색과 공간 사이의 어긋남 등 공간성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구체적인 상상은 관객에게 맡긴다. 이 작업은 전시의 주인공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마치 ‘질투’가 주제인 연극의 배경적 구조물인 듯이 보이기도 하다. 관람객도 전시를 구경하는 관객이자, 연극의
배경에 서 있음으로 인하여 연극적인 상황에 직접 놓인 참여자로서의 동시적 상황에 놓인다. 전시를 보면서 직접적으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관람객은 그 안에서 벌어질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새롭게 쓰고 지운다. 작가의 이야기와 관객의 이야기가 합쳐져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계속 파생하여 다른 이야기가 생성되는 것이다. 한때 ‘관계의 미학’이 동시대 미술을 휩쓴 적이 있다. 이 전시에 관객은 일반적으로 ‘관계의 미학’에서 요구되는 적극적인 행동 참여를 하기보다는 상상적인 참여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 작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위장술>(2017)은 불안을 주제로 한 전시로 이 역시 매우 추상적인 체계나 묘사에 기반한다. 불안을 보이는 요소들은 아슬아슬한 균형감각보다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가벽, 절단된 신체, 커튼 뒤 보이는 불빛 등 전체적인 공감각적 느낌을 전달한다. 김희욱 작가가 감정 이외에 전체적인 작업의 결에서 주목하는 것은 ‘픽션’과 ‘논픽션’이다. 작가는 2012년에 진행했던 초기작 <집짓는 사람>에서도 감정과 감동을 권유하면서 왜곡하는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여기에서도 사람은 자세히 드러나지 않고,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픽션들』의 ‘원형의 폐허들’의 텍스트와 인터뷰를 병치시켜, 공간속에서마음껏감정을표현할수있는상상속의집,허구의세계와 연결지은 공간 구조를 제시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The Apparition(환영)>(2017)에서처럼 김희욱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비현실적으로 후보정된 사진을 사용하여 현대인의 과도한 판타지적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불안정한 구조물 이미지
위에 그러한 사진들을 합성하여 현대인들이 추종하는 이미지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놓여 있는 이미지들을 드러낸다. 진짜 이야기와 가짜 이야기, 그것으로 인하여 잘못 전달되는 오류적인 상황, 혹은 가상에 집착하여현실을도피하는현상등실제상황과연출된상황이함께 보이면서 오늘의 우리가 갖는 혼란스러운 현실을 보여준다. 그 어떤 이야기는 진짜이지만 믿기 어려운 일이 있고, 어떤 이야기는 정말 잘 짜여져 있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있다.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이야기는 부풀려지기도 하고, 일부러 전달이 안되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을 다시 상기시켜보면 김희욱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언어, 상황을 보여주는 것보다 질문들을 병치함으로 인하여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현실은 오히려 허구적일 수도 있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인지, 혹은 사진처럼 눈앞에 보이는 증거적인 부분만이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러한 상황에서 계속적인 선택지만이 눈앞에 보일 뿐인데, <두 갈래의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에서 주인공들은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리는 과정만을 보여준다. 시간은 하나로 선형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이고, 분산되어 이야기의 연결성이나 인과관계가 뚜렷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공존하는 그물망’으로 보인다.
김희욱이 작업하는 방식 역시 한눈에 작업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닌 공간적인 구조물을 배치하고 나열하여 관객의 선택지에 따라다른이야기가펼쳐질수있는가능성을제시한다.각공간구조 안에서 보이는 서로 간의 인과관계나 스토리텔링보다는 작가가 수집하고 리서치한 결과물들은 병치되어 공존하고 있다. 이야기의 무한한 경우의 수는 허구와 실재의 이야기가 뒤섞이도록 한다. 또한 ‘실재’는 그 시간에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국 사람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진 실재’이기 때문에허구와다를바없다.결국전시를보는이,글을읽는이의해석에 따라 재구성되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불안’, ‘질투’라는 모호한 상태를 이야기의 장으로 바꾸어 나간다.
작가는 2019년 <줌 백 카메라>展에서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더 진행한다. 신작 <TBL, The Best Life>(2019)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현대 사회에서 ‘불안을 극복하는 비법’들에 대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는 미디어, 기업, 광고 등 진짜보다 더 완벽한 ‘가짜’를 보면서 살아간다. 다양한 판타지들은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되고, 사람들의 감정은 진짜보다는 가짜가 지배하게 된다. 특히 김희욱은 이러한 불안에 대한 오늘의 현상을 한 여성의 유투버 ‘TBL, The Best Life’라는 채널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완벽한 삶을 위한 3가지 필수 아이템인 ‘나무’(나무 무늬 패턴), ‘눈’(서클렌즈), ‘심볼’(명품)만 있으면 완벽한 삶을 이룰 수 있다고 유투버는 강조한다. 도시적 삶 속에서 과도하게 ‘힐링’을 요구하는 아이템에 숨겨진 욕망, 타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나만의 아이템들은 오늘날 가장 강력한 매체인 ‘유투브’를 통해서 진짜인 것처럼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김희욱은 테레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1944)을 기반으로 하여 구축적인 작업을 보인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현실을 인지하지 않고 계속 도피하고, 시간이 흐른 다음 회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현실과 가짜 이야기가 혼재된다. 무대장치로 여겨지는 사물들도 엇나가는 듯한 지시문 속에서 존재한다. 내러티브의 교차는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구조물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작업은 조명과 영상 작업으로 현대인이 현실을 도피하는 심리 현상의 작동 매커니즘을 풀어낸다.
이렇게 김희욱이 지속적으로 병치하는 것은 감정을 기반으로 진짜와 가짜가 구별되지 않는 세상이다. 가짜뉴스가 계속 생성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믿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옥스퍼드 사전에서 2016년 세계의 단어를 ‘탈 진실(Post- truth)’라고 선정할 만큼 현대 사회는 자극적인 프레임 속에서 정치, 경제적 이익과 어딘가에 숨어서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김희욱이 초기에 설정하였던 사회적으로 분출되지 않는 감정인 ‘불안’, ‘질투’, ‘슬픔’, ‘분노’는 진짜와 가짜가 혼재되어 있는 오늘날 타인에게 조종되고 있는 감정으로 확장해야 할 가능성 안에서 읽어볼 수 있다.